아름다운 풍경

정북토성의 일몰과 야경

꽃마을 2011. 10. 28. 22:49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있는 평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 영조 20년(1744)에

승려 영후(靈休)가 기록한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이 토성 관련 기록이 있다. 신라말 호족의 시기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도읍을 삼아 살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고, 상당산성의 서문 바깥 까치내(鵲江)의 곁에

 토성(정북동 토성으로 추정)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百濟)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후삼국 쟁란기인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의 위치, 주변 여건이 초기 성곽시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675m이고 높이 3.5m, 폭은 8∼13m 정도 된다.

성안에서는 주거지, 기둥구멍, 길, 돌무더기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성을 둘러싸 보호하는

 물길인 해자를 확인했다. 토성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로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 축조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토성이다

<정북토성의 일몰>

 

 

 

 

 

 

 

 

 

 

<정북토성의 야경>